태조 이성계가 설립한 최초의 요양보호기관 ‘기로소(耆老所)’!

작성자 헤리티지너싱홈
작성일 2017-09-08 17:23 | 2,42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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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너싱홈 보다 623년이나 먼저 시작한 태조 이성계.
1394년에 태조 이성계가 설립한 최초의 요양보호기관 ‘기로소(耆老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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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집안에서 기로소 배출 순위가 조선조의 진짜 명문과 문벌을 나타내는 것으로 임금이 직접 경로정신을 실천함으로써 노인을 존경하는 기풍을 조성하며 노인으로 하여금 여생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기로소는 조선시대에 연로한 문신(文臣)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되어 왕과 조정 원로의 친목, 연회 등을 주관하여 1394년부터 1909년까지 존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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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로소의 정신과 위상을 헤리티지가 이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당부하고 싶다. 이제는 헤리티지가 정상화되었으니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문가로서의 지표인 ‘기로소(耆老所)’보다 더 높은 명성과 명예를 위해 생각을 정립하고 나아가 세계최고의 요양기관으로서 헤리티지너싱홈으로 거듭나길 위해 노력하고 함께 동참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이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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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입소자격에 제한을 두고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한다.
기로소는 나이만 되면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고 문신으로서 정2품 이상의 관직을 거치고 70세 이상인 자로 한정하였는데, 반드시 문과에 합격했던 자만이 가능하였고, 음직(蔭職)이나 무과 출신자에게는 입소 자격을 주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나이와 벼슬 품계에 한 가지 더하여 인격의 3요소까지 갖추어야만 입소가 가능했으니 상당히 까다롭게 심사하고 몆년씩 길게는 10년 이상을 대기자로 올려놔야 입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로소에서 입소한 중신들의 혜택은?
임금의 탄일과 설날, 동지, 그리고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왕이 행차할 때, 모여서 하례(賀禮)를 행하거나 중요한 국사의 논의에 참여하여 왕의 자문과 활쏘기 대회도 하였는데, 성적에 따라 우수한 자에게는 활을 하사하고 성적이 좋지 않는 자에게는 벌주를 내렸다고 한다. 벌주를 마시지 않으려고 평소 활쏘기 연습도 했을 것이니 운동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기신들에게 하사품은 쌀이나 한약은 매월 지급했고, 주식과 의복을 비롯하여 과일, 해초류에 세찬(歲饌)까지 지급하여 노신들의 영양보충에까지 신경을 썼다. 한약재를 살펴보면 여름에 필요한 제호탕(醍醐湯)과 익원산(益元散),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안신환(安神丸), 소합환(蘇合丸), 그리고 앵두(櫻桃), 우유(牛乳) 등도 있습니다. 이처럼 양식과 몸에 좋은 음식을 잘 먹을 수 있고 계절에 따라 필요한 한약 처방과 구급약도 받아 제때 복용할 수 있으니 노인의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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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가 추구하는 재활전문치료와 생활지원프로그램의 차별화, 고급화를 통한 입소자들의 품격과 품위를 지켜줄 수 있으면서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를 위해 전문 간호서비스와 생활지원서비의 만전을 기할 것이다. 영양과 건강을 고려한 친환경 식단으로 건강을 생각하는 영양관리 서비스에 대한 철저하게 반영해야 할 것이다.

국가와 사회에 헌신한 노신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정말 신경을 많이 썼던 것으로 기로소에 입소하는 것을 개인의 영광은 물론이고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다고 한다. 헤리티지너싱홈에 입소하는 것만으로도 현대사회에서 가문의 영광이라고 느낄때 우리 헤리티지가 안정화 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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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소 들어간 인물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전 기간 7백여 명 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尹絅, 1567~1664)이라는 분으로 98세였고, 다음으로 숙종 때 97세의 이구원(李久源, 1579∼1675)과 96세의 민형남(閔馨男, 1564∼1659) 등이 있었고, 세종대왕 때의 명재상인 황희(黃喜, 1363~1452)도 90세까지 장수했으니 당연히 ‘기로소 멤버’가 되었다.
그밖에도 조선 초기의 명재상 맹사성(孟思誠, 1360∼1438), 용비어천가를 짓고 한글창제에 참여한 정인지(鄭麟趾, 1396∼1478), 어부가를 지은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 영의정을 5번이나 지낸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 1547~1634), 조선 중기 한문학 4대가로 동의보감 서문을 지은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1564~1635), 대동법을 시행한 김육(金堉, 1580~1658), ‘동창이 밝았느냐’를 지은 남구만(南九萬, 1629∼1711) 등이 있다.

조선시대 ‘기로소’ 배출 순위가 조선의 진짜 명문과 문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1위는 파평 윤씨 23명, 2위는 연안 이씨, 청송 심씨, 안동 김씨 각 21명, 5위는 동래 정씨와 남양 홍씨 각 20명, 7위는 한산 이씨와 안동 권씨 각 19명, 9위는 대구 서씨와 풍양 조씨 각 16명씩입니다. 그런데 왕족인 전주 이씨는 48명이나 된다.

이처럼 명문가의 탄생이 헤리티지에서 또다시 시작되길 바라며, 모든 국민들이 칭송하는 대한민국 대표 요양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직원 여러분들이 위기의식과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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